예상보다 일찍 만난 그분들 
 
궁금했던 하모니카 어르신들을 만났다. 벚꽃필 때 즈음 만나지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너무 쉽게 만나서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일단 맞은 편에 멀지 감치 앉아 합주를 감상하며 발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내 존재를 어필했다. 그냥 인사부터 하면 될 일을 굳이 어필을 하고 자시고가 필요한가? 스스로도 좀 의아했지만, 나의 발장단이 그 분들에게 ‘당신들의 합주를 경청하고 있습니다’라는 긍정적 시그널로 읽혀지길 바랐다. 그럼 뒷일 수월해질 것 같았다. 
 
 소리 나지 않게 박수를 치며 조용히 합주를 감상하다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어르신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이거다, 이건 됐다’ 싶어 약간의 짜릿함을 만끽하려다 설레발 같아서 넣어두었다.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을 준비하시는 동안 나는 박수와 함께 연신 쌍따봉을 날리며 어르신들께 다가갔다. 사진을 찍어도 될지 여쭈었고 기분 좋게 웃으며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어르신 한 분은 자신의 폰을 건내며 합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폰을 들고 맞은편에 앉아서 두 곡을 연달아 촬영했다. 동영상을 본 어르신들은 매우 만족스러워 하시며 감사의 표시로 두유를 주셨다. 나는 두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넉살 좋은 척 그 자리에서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마셨다. 
 
 약간 생뚱맞게 영화 '미지와의 조우'에서 빛과 음계로 외계인과 소통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완벽하게 1:1로 대응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NPC 같았던 존재들이 제 4의 벽을 넘어 소통하는 순간이라는 점에서는 얼추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르신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대학생 정도로 보신 것 같다. 내 나이를 얘기하니 약간 놀라시며 믿지 않으시더라. 당연하게도 결혼 여부를 물어보셨는데 나의 대답에 따라 이후에 이어질 훈계와 젊은 세대의 이기적(?) 면모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며 결혼은 아직이라고 대답했다. 예상과 달리 어르신들은 내 결혼 여부에 아무런 의견도 없으셨다. '우리는 여기저기 공연도 자주 한다'며 다음에 본인들 공연하는 모습을 찍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셔서 '아이고 얼마든지요' 라고 얘기 했지만.. 사실 거기까진 내 시나리오에 없었기 때문에 좀 부담스러웠다. 뒤이어 '양산에서 공연을 하는데 우리랑 같이 봉고 타고 가자'는 어르신의 결정타에 내향인의 에너지는 결국 고갈 되고 말았다. 
 
 일단 시간이 되면 그러겠다 말씀 드리고 명함을 교환 했는데..부디 나의 마음이 준비 될때까지 시간을 주시길 바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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